Portland Story

2. Portland Zine Symposium

최정윤|

‘이상(異常)하다’는 형용사는 대상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정상적인 상태와 다르다’라는 것이 사전을 찾았을 때 처음으로 발견할 수 있는 정의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정상이 아니라는 의미의 ‘비정상’은 흔히 주류에서 벗어난 특징과 형태로 인하여 사회적으로 폭넓게 수용되지 않는 무언가를 칭하는데 사용되는 개념이며, ‘이상함’과 일맥상통하게 쓰이곤 한다. 하지만 포틀랜드에서는 이러한 ‘이상함’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심지어 장려되기까지 한다.

지금 포틀랜드에서는 ‘Keep Portland Weird’를 외치며 ‘이상함’을 유지하자는 비공식적인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넘쳐 나는 개성을 마음껏 표현하자는 포틀랜드만의 사고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보헤미안과 히피의 고향인 포틀랜드는 이상한 모든 것을 자유롭고 특별한 것으로 인정한다. 이러한 성향의 반영으로 포틀랜드에서는 펑크와 인디로 상징되는 다양한 문화 및 예술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거리예술부터 여성과 남성 모두가 나체로 자전거를 타는 ‘Naked Bike Ride’까지 그 범위는 다채로우며 대부분은 상상 그 이상이다.




문화 예술 활동은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욕망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초기부터 사용됐던 인쇄물은 인류의 곁에서 꾸준하고 성실하게 제 역할을 다 해왔다. 포틀랜드 역시 ‘Zine’이라는 형식의 인쇄물을 활용하여 사람들의 다양한 상상을 종이에 담아내왔다. 나아가 그들의 작업은 세계적으로 큰 규모의 ‘Zine’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에 일조하기도 했다. 세계 곳곳에서 개인적으로 인쇄물 관련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도시 전체가 나서서 그러한 작업을 장려하고 체계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하는데 앞장서는 모습은 흔하지 않다. 16년간 1년에 한 번씩 개최되어온 ‘Portland Zine Symposium’에서 나는 포틀랜드만의 Zine 문화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Zine

Zine(이하 장르잡지)은 내용이나 형태의 제약 없이 저렴한 가격으로 제작되는 인쇄 형태의 표현물을 일컫는다. 간단하게는 A4 용지를 4등분 해 낙서처럼 끄적인, 잡지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머쓱한 장르잡지부터 직접 실로 꿰매 제본한 잡지까지 그 종류와 형태는 무궁무진하다. 따라서 장르잡지란 취미로 만들어 친구들과 돌려 읽는 미니코믹에서부터 독립출판물 모두를 포괄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특정 기술이 요구되지 않고 제작비가 저렴하기 때문에 누구나 만들 수 있고 담는 콘텐츠의 제약이 없다는 점은 출판물 사이의 경계를 더욱 무색하게 만드는 동시에 누구나 출판물을 제작해볼 수 있는 시대를 열게 되었다.

(장르잡지의 시작은 ‘Fanzine’에서 출발한다. 1970년대 미국의 뉴욕과 영국의 런던을 풍미했던 펑크는 당시 주류에 반(反)하는 음악을 통해 여러 청년들의 가슴을 불태웠다. 형식과 자유에 얽매이지 않고 누구나 쉽게 연주할 수 있는 곡을 선보인 라몬즈(Ramones)의 음악 스타일은 청년들이 직접 기타를 잡고 연주하도록 만들었다. 그 후 ‘DIY’ 열풍이 일었고 많은 팬들은 각자 좋아하는 밴드를 홍보하는 잡지, 즉 ‘fanzine’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 후 홍보에 쓰이는 팸플릿이나 전단지를 시작으로 점점 그 분야가 넓어졌다.)




Zine Symposium은 그러한 맥락에서 출판을 통한 ‘표현의 자유’를 경험하고 이미 장르잡지를 제작하고 있는 ‘Zinester(이하 진스터)’들을 한 데 모아 경험과 팁을 공유할 수 있도록 기획된 이벤트다. 장르잡지와 유사한 창작물이라고는 초등학교 시절, 8등분해서 만든 ‘아바타북’이 전부였던 내가 노련하게 만화와 글을 쓱쓱 써내려가는 진스터 사이에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수업 형태의 워크샵은 꽤나 상세하면서도 친절했고, 나는 자연스럽게 분위기에 스며들어 장르잡지의 이모저모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었다.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

Zine 워크샵, 그 첫 번째 순서는 ‘나만의 글씨체’ 만들기였다. (장르잡지의 텍스트는 타이핑 또는 손글씨로 작성할 수 있고, 콜라주로 글씨를 만들 수도 있다. 따라서 고유한 글씨체를 고안하는 것은 꼭 필요한 과정인 것이다.) 항상 글씨체가 예쁘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날만큼은 나의 글씨체가 같은 테이블의 예술가들에 비해 딱딱해 보였다.

헝클어진 초록색 머리를 하고 내 도화지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옆 자리의 만화가는 “글씨에도 감정이 있다”라며 말을 걸어왔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쓰는 글들이지만, 우리가 화날 때, 행복할 때 그리고 슬플 때, 각각의 상황과 감정에 따라 그 형체는 제각각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실제로 다양한 감정들을 회상하며 같은 문장을 썼을 때, 띄어쓰기의 간격이나 글씨의 크기와 형태가 조금씩 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감정이 드러나는 손글씨 보다는 항상 같은 외형으로 일관하며 ‘진짜 감정’을 숨기는 디지털 방식의 글쓰기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은 감정 표현에 더 서투르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손글씨에서 감정을 느낀 순간, 나는 그동안 내가 글과 말을 통해서 표현하고자 했던 진솔한 생각과 감정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결과적으로 그동안의 나는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그대로 전하지 못하고 진짜 감정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와 같은 글과 감정의 관계를 미루어 볼 때, 장르잡지를 제작하는 것을 ‘labor of love’라고 지칭하는 것은 분명 합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통상적인 의미로 ‘labor of love’란 보수와 물질적인 대가 없이 자진해서 참여하는 취미활동을 일컫는다. 하지만 적어도 장르잡지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인쇄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글자 그대로 ‘사랑의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약간의 언어적 유희를 추가하자면 장르잡지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사랑과 열정의 감정을 표현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포틀랜드와 장르잡지

대량생산되는 상품을 소비하는 것보다는 작지만 섬세하게 손으로 직접 만든 상품을 선호하는 포틀랜드에서 장르잡지가 굳건히 자리하고 있는 모습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자기표현’을 포용하고 장려하는 풍토가 활발한 DIY 생활문화로 연결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장르잡지는 ‘인쇄’의 형태로 이상하고도 독특한 발상을 꾸밈없이 담아내고 있을 뿐이다. 다만 포틀랜드를 대표하는 ‘Powell’s Book Store’과 같이 세계적으로도 가장 큰 서점에서까지 장르잡지가 전시되고 있는 모습은 아직까지 외롭고 쓸쓸한 대한민국 독립출판계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일본에서는 출판을 시작으로 패션디자인, 크래프트 아트 등의 분야에서 ‘디자인을 오픈하자’는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예술 작품을 누구나 쉽게 창작하고 결과물을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과 서비스 역시도 크게 유행하고 있다. 누구나 주체적으로 창작물을 만들어내고 본인의 생각과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시대, 국내에서 독립출판물이라 지칭되는 장르잡지 등장의 이면에는 예술과 창작을 대하는 사고의 전환이 전제되어 있다. 유년기의 모래 장난, 낙서와 같은 가볍고도 자유분방한 창작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상황 속에서, 시대는 우리에게 조금 더 능동적인 창작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장소: Independent Publishing Resource Center

IPRC는 만화, 장르 잡지 등을 포함한 여러 독립출판물을 제작 및 배포하고 있다.

1998년에 설립되어 포틀랜드의 수많은 독립출판 제작자들을 후원하고 있는 독립출판의 중심지이다.

언더그라운드 신인작가 및 예술가들에게 마음껏 창조하고 그릴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고

흩어져 있는 개인 창작자들의 네트워킹을 담당하고 있다.

홈페이지: www.iprc.org






'Portland Story' 연재글 리스트

1. Farmer's Market
2. Portland Zine Symposium (현재글)
3. Food Cart Pod

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최정윤

아름다운 세상을 소소하게 보고, 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