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Human Scale in Japan

3. 교토는 교토다

곽재원|

교토는 <천년 수도, 고고한 도시 교토>라는 문장으로 불린다.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인해 에도막부로부터 천황에게 국가의 통치 권한이 옮겨가면서 이미 정치적 수도의 기능을 하고 있던 에도(도쿄의 옛 지명)가 정식으로 일본의 수도가 되기 전까지, 교토는 오랫동안 일본의 수도였다. 그 길고도 화려한 역사적인 배경 덕분에 교토에는 정말 오래된 상점들이 즐비하다. 100년 정도 된 가게는 새내기에 불과하다. 몇백 년 된 가게가 넘쳐 나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거대한 문화재 같은 도시이다. 도쿄나 오사카보다는 면적이나 인구로 볼 때 작은 도시라 할 수 있지만, 도심의 발달이나 편의 시설을 감안하면 일본 내에서도 손꼽히는 풍모를 지니고 있다.

교토를 여행하다 보면 발에 채도록 많은 것이 세계문화유산과 국보급 문화재이다. 처음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볼거리가 매우 많아 아쉬움을 남기며 다음 여행을 기약하곤 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본 자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교토는 일본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손꼽히고 있다. 사실 10여 년 전 까지만 해도 교토는 그렇게까지 인기 있는 관광지는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등장한 광고 한편은 교토의 이미지를 새롭게 바꾸었다. 그것은 바로 JR 신칸센의 광고였다.


“그래 교토에 가자!”


한마디 광고문구가 현대화와 서구화만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던 일본인들의 가슴을 뛰게 했고, 시간이 흐르며 전 세대를아우르는 관광객의 증가를 이뤄냈다. 이렇듯 국내외 방문자들로 언제나 붐비고 사랑받는 곳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교토는 일본인들이 가장 기피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うらおもて(우라오모테)라는 표현은 한국말로 하자면 겉과 속이 다른 시민성을 뜻한다. 일본 내 다른 지역 사람들은 교토 사람들이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앞으로는 품위 있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교토가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문화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몸에 배어버린 고상한 습성이라 평가하고 싶다. 격식 있고 품위 있는 태도를 보였을 때 그들은 마치 아름다운 꽃을 바라보는 듯 마음을 열어 오는 이를 환대한다. 일상이 되어 버린 위대한 문화적 유산을 보고 자란다는 것은 환경적으로 지역민에게 고도의 심미안을 안겨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0년 만에 방문한 교토는 과연 얼마나 변해 있을까? 그동안 수많은 도시를 여행해왔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목도한 변화상에 놀라 나의 기억저장소를 리셋해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처음 방문한 공간은 2014년 교토시에서 주최한 [빈집 활용 × 마을 만들기] 모델 프로젝트 공모에 2개의 빈집을 ‘실’에 관한 쇼핑과 교류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출, 선정되어 리노베이션한 ITONOWA라는 곳이었다.

입구에 있는 테이크 아웃 가능한 `GOOD TIME COFFEE`의 카운터에서 주문을 하고 작지만 아기자기한 소품이 가득한 마당을 바라보고 있으면 오래된 목조 주택과 빈티지한 감성이 내뿜는 사소한 안정감 속에서 사색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마당을 중심으로 건물은 크게 서쪽과 동쪽 2동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동-서 건물에 있는 `타타미노마(タタミノマ)`와 `이타노마(イタノマ)`에서는 워크숍, 세미나뿐만 아니라 지역 모임 등이 열리는 이벤트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곳은 단순한 상업시설이 아닌 마을공동체를 위한 새로운 문화 교류의 장이 되길 바란다. 손님을 불러 모으는 것만을 목표로 삼지 않고 지역 주민과 더불어 생활하며 가치 있는 지역 문화를 발굴하고 함께 마을의 새로운 매력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동네는 한때 옷이나 빈티지 드레스 등 주로 원사와 직물을 취급하는 가게가 모여 있던 곳이었다. 100년 된 빈집을 개조한 실과 천, 실크를 주제로 한 복합문화시설에서 그들은 자연과 사람이 모이는 구조를 만들고 예전의 활기를 되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Information

주소 : 2-357 Tsukinuke, Shimogyo-ku, Kyoto-shi

영업시간: 11:00-20:00

공휴일: Wednesday (except when Wednesday is a holiday, in which case the shop is closed on Thursday)

가까운 역: Tanbaguchi Station

웹사이트: http://itonowa.jp/






300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교토 기온 지역의 하나미 코지(Hanamikoji) 거리는 게이샤 거리로도 유명하다. 나는 전통적인 기온 마치야(Gion-machiya) 주택에 현대적인 해석을 덧입힌 ‘Hermès Kyoto Gion-mise(에르메스 교토 상점)’로 발길을 옮겼다. 사계절에 대한 모티브와 장인 정신, 전통, 그리고 혁신을 묶어낼 오래된 2층 목조 주택에 회전식 워크샵 및 이벤트를 덧입혀 9개월이라는 한정된 기간 동안 선보였다.

도착하면 화려한 에르메스 스카프의 대표적인 패턴이 표면에 그려진 스케이트보드가 쇼윈도에 진열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매장은 공간의 재생을 보여주는 동시에 조금은 고전적이면서도 중후한 브랜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적극적인 시도를 보인다. 매장과 보드 위에 새겨진 <GOOD MOVE>라는 문구가 아주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1층은 역사적인 팝업스토어답게 신발, 시계, 향수, 액세서리 등 가볍게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이 진열되어 있었다.




전통적인 마치야의 주택을 새롭게 개조한 인물은 디자인 스튜디오 넨도의 졸업생이자 인테리어 분야의 수석 디렉터로 10년 동안 일해 온 Koicihro Oniki씨이다. 그는 리뉴얼 과정에서 일본 전통 목공 기법인 ‘kigumi’를 사용하였다. 접착제나 나사, 못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의 자연적인 조합만으로 접착하는 방식이다. 나무 작업은 상품을 디스플레이하기 위한 선반을 제작하는 용도로 활용되며 2017년 7월 말에 팝업스토어가 종료되면 쉽게 분해할 수 있어 친환경적이다.

2층으로 올라서면 벽면에 브랜드 이미지를 다루는 영상이 상영되고, 한편으로는 아이패드를 통해 소품을 활용하여 코디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스케이트보드 스팟으로 꾸며진 공간에서는 보드를 타며 기억할만한 한 컷을 남길 수 있는 포토존 또한 마련되어 있다. 총평하자면 새롭게 혁신한 브랜드 이미지를 공간, 시각, 그리고 다채로운 체험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획기적인 시도라 하겠다.



Store Name: Hermès Kyoto Gion-mise

Time: 3rd November 2016 – 31st July 2017

Place: 570-8 Gion-machi Minamigawa, Higashiyama-ku, Kyoto

Opening Hours: 11:00 – 19:00

Closed: Thursday

http://en.stores.hermes.com/Asia/Japan/Kyoto/Hermes-Kyoto-Gion-mise







불광사라는 사찰에는 ‘전하는 상점’이라는 뜻을 지닌 또 다른 재미난 장소가 있다. 생활불교가 자리 잡은 일본답게 종교적 공간 안에서도 정제된 디자인 제품 컬렉션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디앤디파트먼트(D&DEPARTMENT)는 오래도록 지니고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생각하고 전하는 곳이다. 다시 말해 생명을 지닌 디자인, 유행이나 시대에 좌우되지 않는 보편적인 디자인을 제안한다는 의미이다. 디앤디파트먼트는 생산 연대나 브랜드, 신품·중고품 등에 얽매이지 않는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며, 사물 그 자체의 기능성과 디자인을 검토하여 일본 전역은 물론 전 세계로부터 수집한 생활 잡화와 가구 등으로 상품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다. 산업용품과 업무용 제품 가운데서도 생활 속에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선택하여 생활용품으로 내놓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또한, 디앤디파트먼트는 한때의 유행에 편승하지 않으면서도, 전통적 방법으로 오랫동안 제작되고 사용되어온 물건, 그리고 오늘도 촌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는 완성된 디자인적 가치를 지닌 상품을 찾아내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보편적 디자인 덕분에 모든 시대에서 변함없는 가치를 가질 수 있는 롱 라이프 상품만을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취급하는 모든 상품의 재매입을 보증하고 있다.




지역의 특산품을 매장에서 함께 판매하고, 교토조형예술대학교와 협약을 맺어 작품 전시 및 판매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상품을 포장할 때는 재생지에 상호가 적힌 스티커를 붙여 주는 방식을 활용하며, 그와 유사한 환경적 가치 실현을 위해 폐가구를 활용해서 만든 업사이클링 가구도 취급한다. 일본 내 10개의 도시에 12개의 매장을 가지고 있으며 서울에도 이미 한 개 지점이 운영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애플이나 무인양품, 츠타야 서점과 같이 철학을 가진 브랜드에 열광하는 수요층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상품을 단순한 사물로 보는 것을 넘어 지역과 대중에게 어떤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거품경제 시대를 지나 저성장 시대를 보내는 일본의 현실 속에서 오히려 그들은 새로운 가치를 위한 시대를 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같은 사찰 안에 위치한 D&D식당 역시도 지역의 재료를 사용한 정갈한 쇼진요리와 합리적인 가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Address: Japan, 〒600-8094 Kyoto Prefecture, Kyoto, 397 Shinkaicho Bukkoji Sagaru Takakura-dori, Shimogyo-ku Honzan Bukkoji

Hours: shop/10:00〜18:00 cafe/11:00~18:00

close: Wednesday

http://www.d-department.com/jp/shop/kyoto







이번 교토여행을 설레게 했던 또 하나의 이유, 바로 고도에 새롭게 등장한 숙소들이다. 그중에 대표적인 HOTEL ANTEROOM KYOTO는 방문자를 위한 호텔과 장기거주를 위한 아파트를 조합한 새로운 개념의 공간이다. 23년 동안 학교기숙사로 사용되던 공간에 디테일이 살아있는 오리지널 가구를 배치하고, 심플하고도 질리지 않는 디자인을 살린 결과 2011년 4월에는 북관 61개 객실이 오픈하였다.

2016년 7월에는 기존 호텔 컨셉인 ‘아트&컬쳐’에 ‘평화’라는 주제를 더하면서 새롭게 남관 67실을 증축하였다. 또한, 조각가 名和晃平(나와 코오헤이) 씨가 이끄는 creator group인 'SANDWICH'를 비롯하여 교토나 간사이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나 크리에이터를 파트너로 맞아 예술을 주제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UDS 주식회사가 사업 기획, 설계,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호텔은 ‘365일 아트 페어’라는 주제 아래 8명의 아티스트에 의해 꾸며진 유니크한 공간부터 모던함 속에 디테일을 재해석한 빈티지스타일 객실과 공유공간까지, 80여 명에 이르는 아티스트의 참여를 통해 완성해냈다.

안터룸의 1층은 Gallery 9.5라 부르는 갤러리이고, 이곳에서는 교토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를 소개하는 기획전을 비롯한 여러 실험적인 전시가 이루어진다. 9.5는 교토의 도시구획을 나누는 9조와 10조의 위치를 의미한다. 숙박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미술작가의 자유로우면서도 창의적인 아뜰리에를 방문한듯한 기분이 든다. 그 왼편에는 투숙객과 관람객을 위한 캐쥬얼한 아트숍이 있다. 건물 각층 복도에서도 다양한 컨셉을 갖춘 그림과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마치 베네세하우스의 보급형 버전을 보는듯하다. 또한, 호텔 내에 전시된 모든 예술 작품은 직접 구매할 수 있다.





로비나 바(Bar) 같은 공용 공간에서는 정기적으로 여행의 감성에 더해 기분 좋은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콘서트인 ‘Ante Ground Music LIVE’가 진행되고, 예술 및 디자인과 관련한 토크 이벤트와 워크숍 또한 개최되고 있다.

편리한 카드키를 거부하고 차가운 금속키를 통해서만 작동하는 방안 조명들. 지금은 불편하게 느껴지는 감각조차도 향수로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공간인 안티룸은 교토의 오늘을 표현하는 예술과 사람, 문화가 모이는 곳이자 변화를 즐기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 호텔이라고 하겠다.



7Aketacho Higashi-Kujo Minami-Ku Kyoto Japan

TEL 075-681-5656

http://hotel-anteroom.com/




어쩌면 교토는 오래된 역사와 시간이 만들어내었다고도 할 수 있는 고전적인 도시란 이미지로 기억되길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 다른 천년이 지나도 지속가능한 도시가 되고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통의 맥락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기존의 개념을 창의적으로 파괴하고 진보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 거부할 수 없는 도도한 매력, 역시 교토는 교토다.







'New Human Scale in Japan' 연재글 리스트

1. 나의 살던 고향은 오바마
2. 자전거를 타고 온 '오노미치'
3. 교토는 교토다 (현재글)
4. 도쿄 - 츠타야의 신화 그리고 열광하는 사람들

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박혜주

곽재원

Digital Nomad, 우주라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지구별을 탐험하는 여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