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Human Scale in Japan

4. 도쿄 - 츠타야의 신화 그리고 열광하는 사람들

곽재원|

후쿠시마 사태 이후로 한국인들의 인식 내에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후쿠오카나 오사카에 조금씩 그 권위와 인기를 내주고 있지만, 도쿄가 여전히 아시아 최고의 도시 중 하나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세계 최고의 문물을 한자리에 모으고 싶은 편집증적인 팽창을 거듭한 결과 이미 괴물처럼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이 도시는 오늘도 또 다른 성장과 재생을 반복하고 있다. 십 년 만에 방문한 이곳은 내게 추억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고 또 다른 매력을 꺼내 보이며 나의 여정을 채우기 시작했다.




과거 연일 최고급 샴페인을 터트리며 불야성을 이루던 긴자의 고급주점들이 멈춰 서고 명품 매장으로 즐비하던 대형백화점도 하나씩 문을 닫게 되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고속 성장하던 일본의 버블경제는 마침내 1997년 3월을 기점으로 붕괴하기 시작하였고, 일본 사회는 불가피하게 새로운 소비 방식을 찾기 시작했다. 그쯤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100엔 샵, 유니클로, 무지와 같은 브랜드들이며 책을 전시하고 구매하는 상업시설의 개념을 넘어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츠타야 서점도 이와 같은 시대적 흐름을 바탕으로 하여 탄생한 브랜드이다.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도 열풍에 가까운 관심을 받고 있는 츠타야 서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카이 세대’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 단카이 세대는 일본의 베이비부머를 가리키며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보다 정확히 10년 정도 앞선 1947년부터 1949년까지 태어난 세대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 후 출생한 이들은 젊은 시절, 일본 고도성장기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았을 뿐 아니라, 화려한 문화소비의 안목과 경험을 가진 소비문화의 주체이다. 심지어 현재도 일본 내 개인 자산의 가장 많은 부분을 보유하고 있는 풍요의 세대라 할 수 있겠다. 한편으로 이들은 포크송 세대, 비틀즈 세대라고도 불린다.




단카이 세대를 이야기할 때면, 나는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1949년 1월 12일 교토 출생, 1968년 와세다 문학부 연극과 입학)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부유하고 풍족했던 경제적, 문화적 감성을 지닌 골든 제너레이션의 향취는 그의 작품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風の歌を聴け), 1973년의 핀볼(1973年のピンボール),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世界の終りとハードボイルド・ワンダーランド), 재즈의 초상(ジャズの肖像) 등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특히 그의 대표작인 소설 노르웨이의 숲(ノルウェイの森)에는 주요 장면으로 일본 대학생들의 치열했던 학생운동이 등장하는데, 단카이 세대는 프랑스의 1968년 5월 혁명 정신을 이어받은 별칭으로 ‘전공투세대’라고도 불린다. 하루키는 이들의 젊은 시절을 상실, 소외, 자폐라는 단어로 표현하기도 했다.

저출산 시대에 산업인력을 대체하기 위해서 단카이 세대는 은퇴 후에도 끊임없이 사회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까지도 소비능력이 매우 높아 이 세대를 포함한 60세 이상 인구가 일본 가계소비지출의 약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고속성장에 도취되어 있는 이 세대는 우경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런 모습조차도 한국과 닮아있다는 점은 무척이나 아이러니하다.




단카이 세대의 자녀 세대를 단카이 주니어 세대라고 하고 이를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신세대 또는 X세대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세대의 청춘들은 부모의 재산으로 삶을 영위하는 상류층이거나 혹은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서 취미를 즐기고 있다. 일은 아르바이트나 프리랜서 방식으로 수행하며 필요한 만큼만 벌며 생활하는 프리타 족도 주로 이 세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생활양식이다. 이들은 현재의 삶에 대체로 만족하여 욕망의 사다리를 올라 성공하려는 의지가 없다. 경제성장이 둔화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적 신분 상승을 포기하고 인생을 즐기는 쪽으로 삶의 목표를 선회한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일련의 경제적 희로애락을 겪어내고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지금 일본의 젊은 세대인 2030 사토리(さとり) 세대이다. 그 의미는 ‘해탈의 세대’. 욕망을 포기한 구도자처럼 돈벌이는 물론이고 출세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 모습이 특징이다. 전통적 관점에서 보면 도전하지 않고 패기도 없는 세대로 상실과 허무를 넘어 이제는 무념무상의 시대로 접어든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2011년에 개점한 다이칸야마 츠타야 티사이트(daikanyama tsutaya t-site)가 주로 염두에 둔 소비계층은 ‘단카이 세대’였다. 그 결과 지금은 사라져 버린 황금시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비문화에 기반을 둔 문화공간이 탄생하였다.

츠타야 서점은 기존 서점 운영 방식처럼 단지 책만을 카테고리별로 진열하여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고 자연스럽게 구매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방식을 채택하였다. 이는 수많은 정보와 광고의 홍수 속에서 내게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미니멀한 제안서를 내밀어주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컨시어지(Concierge) 제도다. 코너 곳곳에 ‘컨시어지’라는 전문가가 컬쳐 소믈리에처럼 고객에게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상품을 제안해주는 역할을 한다. 여행 코너에는 20권 이상 가이드북을 저술한 여행 저널리스트가, 음악 섹션에는 재즈, 클래식, 록 그리고 팝 음악 등 모든 종류의 음반을 갖춰둔 것은 물론이고 장르별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직원이 배치된다. CEO인 마스다 무네야키 씨처럼 그들 중 상당수가 위에서 언급한 단카이 세대의 구성원이다. 같은 세대의 풍요를 누렸던 친구에게는 공감을, 빈곤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겐 풍요로웠던 하루키 시대의 과거 유산을 전달하는 가교와도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미니멀한 라이프 디자인의 선구자이자 무인 양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며 지평선 시리즈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하라 켄야(1958년~)는 츠타야 서점의 기본 로고 타입과 간결한 한자 로고 디자인, 도트화 또는 입자화를 통해 로고 타입을 갱신하는 작업을 수행하며 로고, 표지판, 브랜드 디자인 총괄을 맡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이 지점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20에도 선정되었다.





츠타야 서점의 또 다른 대표적인 특징은 연상작용을 일으키는 무의식의 흐름에 따라 배치한 제품의 진열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요리 관련 정보나 지식 상품이 필요한 소비자가 책의 카테고리와는 상관없이 해당 섹션으로 이동하면 그곳에서는 요리와 관련된 서적들은 물론이고 요리를 하는 데 필요한 식기와 식재료까지 함께 판매한다. 패션 관련 코너에는 다양한 액세서리와 가볍게 구매할 수 있는 잡화와 의류가 있고, 여행 섹션에는 가이드북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여행지를 향하는 상품을 바로 예약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식물에 관한 서적 옆에는 가드닝에 필요한 용품들이 마련되어 있고, 어류 관련 공간에서는 수족관 속에서 노닐고 있는 열대어를 볼 수 있다. 마치 살아있는 백과사전을 보는 듯하다. 덕분에 구매자는 많은 시간을 들여 다양한 상점을 방문하거나 인터넷 서핑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 없이 원하는 콘텐츠를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SNS상에서는 고객들이 자신의 취향을 공유하고, 오프라인 공간은 사교의 장이 되며, 그 결과 온-오프라인 소비 개념을 넘어선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T-SITE에는 세 개의 건물을 관통하며 약 55미터 규모를 자랑하는 매거진 스트리트가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전 세계에서 발행되는 잡지를 6개 카테고리(Cuisine, Travel, Cars and Motorcycles, Architecture and Design, Art, and Humanities and Literature)로 분류하여 전시하고 있다. 영화 섹션에서는 더는 구할 수 없는 DVD 등 소비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즉석에서 편집해 DVD로 구워준다. 음악 섹션에 마련된 약 40여 개의 좌석에서는 12만 개 앨범을 자유롭게 들어볼 수 있다. Anjin Library&Lounge에는 전 세계에서 수집한 희귀 도서 및 잡지를 비치해 놓았다. 특히 60년대 및 70년대에 발행된 30,000여 개의 잡지를 갖춰둔 덕분에 마치 서점이 아닌 도서관을 보는 듯하다. 약 120여 개의 좌석이 비치되어 있으며 안락하게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나는 이 서점을 가득 채운 방대한 영역을 망라한 전문서적과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문화콘텐츠의 양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관심 분야를 제외한 그 어떤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관심 대상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으로 깊게 파고드는 괴짜 집단이 만들어 낸 일본의 뿌리 깊은 오타쿠 문화를 츠타야의 성공 요인 중 하나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원래 오타쿠(オタク)란 표현은 타인의 집을 존댓말로 칭하는 ‘댁(宅)’이라는 뜻이다. 초기에는 기성 사회와 동떨어진 채로 자기만의 세계에만 몰입하는 사람들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진 존재로 여겨지며 일본 주류사회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오타쿠의 이미지를 가진 배우 오다기리 죠가 수많은 대기업 광고에 등장하는 모습을 보면 그러한 추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몰입했던 수많은 관심사의 정수가 츠타야 서점 안에 고스란히 쌓여있다. 고속성장을 강요하는 일본의 집단주의 사회 안에서 낙오되어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했던 그들이 쌓아온 지식과 소비능력이 오늘날 일본의 또 다른 문화 저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중요한 사실이다.




츠타야 서점을 만든 CCC그룹은 1983년 3월, 오사카의 히라카타역 광장에서 ‘TSUTAYA SHOTEN’이란 브랜드로 첫 점포를 개점하면서 그 시작을 알렸다. 현재 일본 전역에 약 1천 5백 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통합 포인트 카드인 ‘T 카드’는 일본인의 약 1/3에 해당하는 5천만 명 정도가 지속적으로 활발히 사용하고 있다. 또한, 지난해 매출액은 약 2조 5천억 원 정도이다. 츠타야는 어느 날 갑자기 급부상한 브랜드가 아니다. 동네마다 하나씩 있는 CD, DVD 대여 및 판매 사업에서 시작하여 미래를 철저히 예측하고 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오늘날 츠타야 서점의 신화를 일구게 된 것이다. 문화적 인프라와 편의 시설을 제공함으로써 대중들이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는 생각은 오늘 이 순간도 유효하다. 애플처럼 가치와 신념 공동체적인 성향이 있다고 해석하기도 있지만, 그것을 선행에 두었던 애플의 행보와는 달리 고객이 필요로 하는 환경을 우선적으로 제공하고 사회 환경과의 관계를 설계했다는 점에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도쿄에 도착하기 전 후쿠오카나 오사카에 있는 지점들을 방문했지만, 도쿄의 그곳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기본적인 매뉴얼에 충실한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다이칸야마의 티 싸이트를 비롯하여 나카메구로, 롯본기 등에 위치한 서점들은 어느 하나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곳이 없다. 전문가들과 충분한 상의 끝에 지역 구성원들의 삶의 패턴을 계산하고 취향을 정확히 반영하여 제각기 다른 구성으로 공간을 꾸미기 때문이다. 도쿄 주민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삼대 동네 중 하나인 후타코 타마가와의 츠타야 일렉트로닉스에서는 가전 영역까지 공간의 범위를 확대하여 재해석한다. 또한 CCC(컬처 컨비니언스 클럽)은 온천으로 유명한 다케오시 시립도서관을 기획하여 설립하고는 화제를 몰아가며 연간 방문객 100만 명이 넘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 서점은 CCC와 독립하여 별도의 법인으로 지역 community와 함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이전에는 명품으로 치장하고 아오야마 거리를 걷는 게 최고의 멋으로 비춰진 반면, 지금은 도쿄 츠타야 서점에서 문화를 소비하고 책을 읽으며 스타벅스 커피 한잔을 음미하는 사람이 주목받는 시대다. 마치 멋진 철학을 가진 브랜드에 열광하며 소비하는 광신도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들이야말로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는 합리적인 해답을 찾아낸 현명한 수학자일지도 모른다. 요즘 한국의 대형서점도 츠타야의 영향을 받아 시간을 두어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설치하고 다양한 상품을 전시하는 방향으로 재단장을 하거나 새로운 지점을 열고 있지만, 그 겉모습을 흉내 내기에 급급한 듯 보여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제 우리는 결핍의 시대 속에서 세대를 연결하여 문화를 재생하고 과잉의 사회 속에서 소소한 집중을 도우며 지역의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츠타야의 모습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Daikanyama T site Address: Japan, 〒150-0033 Tokyo, 渋谷区Sarugakucho, 17−5 Hours: Open 7AM–2AM Phone: +81 3-3770-2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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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곽재원

Digital Nomad, 우주라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지구별을 탐험하는 여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