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RBAN INSIGHT SERIES - 덴마크의 도시재생

2. [INTRO] 행복도시로 거듭난 천년 고도 코펜하겐 下

NAKED DENMARK|

도심과 교외를 잇는 다섯 손가락

1947년 코펜하겐 도시계획위원회 기술국(Egnsplankontoret)은 다섯 손가락 계획(Fingerplanen)이란 이름의 도시 개발 계획을 발표한다. 지리 구조상 손바닥에 해당하는 코펜하겐 시내부터 마치 다섯 손가락처럼 통근 열차 S트레인 노선을 사방으로 뻗어내어 도심과 교외를 연결하고, 대중교통 이용을 활성화하며, 도심에 집중된 주요 시설을 분산한다는 구상이었다. 그리고 손가락 사이에 해당하는 구역에서는 녹지를 보존하여 농지와 쉼터로 활용하고자 했다.

하지만 1951년 도시 개발 계획 1단계 착수와 동시에 현실적 문제가 나타났다. 몇몇 거점 도시는 계획보다 비대해졌고, 기존 거점 도시가 새로 생긴 도시에 흡수되기도 했다. 다섯 손가락 계획에 포함되지 못한 셸란 섬(Sjælland) 북동부 지역에서는 오히려 교통량이 급증했다.

2007년, 시 당국은 다섯 손가락 계획의 한계를 인정하고, 코펜하겐 근교를 ‘손바닥’에 포함한 새로운 도시 계획인 2007 다섯 손가락 계획(Fingerplan 2007)을 발표했다. 세부 실행 방안을 살펴보면 기차역을 지역 거점으로 활용하기 위해 사무용 고층 빌딩과 문화 시설을 역에서 600m 안에 지어야 한다는 지침이 만들어졌고, 손가락이 지나는 교외 지역 사이는 교통이 불편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거점 도시를 직접 연결하는 방사형 도로망을 확충했다.


<URBAN PLANNING IN COPENHAGEN: Towards a Sustainable Future> p.12


다섯 손가락 계획을 통해 형성된 덴마크 수도권(Greater Copenhagen)

○ 북/새끼손가락

– 외레순 해협을 낀 전통적 부촌을 관통

– 겐토프테(Gentofte), 헬레루프(Hellerup), 링뷔(Lyngby)

– 27만여 명 거주

○ 북북서/약지손가락

– 상류층 주거지와 중산층을 위한 대규모 거주지

– 파룸(Farum), 글라드삭세(Gladsaxe), 쇠보르(Søborg)

– 10만여 명 거주

○ 북서/중지손가락

– 코펜하겐 수도권에서 가장 산업화된 지역

– 헬레우(Helev), 발레루프(Ballerup) 등지에는 중산층이 선호하는 낮은 단독 주택 단지와 저층 아파트가 많음

– 11만여 명 거주

○ 서쪽/검지손가락

– 가장 불우한 지역으로 인구당 수입이 가장 낮고 범죄율은 가장 높음

– 유일한 부촌인 글로스트루프(Glostrup)

– 알베르트슬룬(Albertslund)과 토스트루프(Tåstrup)에는 저층 건물이 많음

– 거주자 14만 5천 명 가운데 20% 가량은 이민자 혹은 이민 2세대로 추산됨

○ 남서/엄지손가락

– 도심과 가까운 곳에는 저소득 계층을 위한 고층 건물

– 교외에는 중산층을 위한 단독 주택 단지가 많음

– 흐비도우레(Hvidovre), 뢰도우레(Rødovre), 이쇼이(Ishøj), 쾨에(Køge)

– 21만 5천여 명이 거주

코펜하겐이 성장함에 따라 당초 다섯 손가락 계획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아마게르 섬(Amager) 역시도 개발 당국의 눈에 들어왔다. 당시만 해도 아마게르는 코펜하겐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처리하는 땅이었기에 현대적인 기반 시설이 전무했다. 그러나 30분 안팎이면 시내에 들어설 수 있는 입지 조건에 힘입어 이 섬 역시도 1993년 이래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2000년 외레순 해협 건너 스웨덴 말뫼(Malmö)로 이어지는 외레순 다리(Øresundsbroen)가 완공되자 아마게르의 입지는 한층 더 공고해졌다. 현재 5만 3천여 명 가량이 사는 아마게르는 코펜하겐의 대표적인 신도시 개발 지구인데, 흥미롭게도 외레순 다리 덕분에 스웨덴 말뫼가 코펜하겐 교외로 편입된 양상을 보인다. 요즘에는 집값이 저렴한 말뫼에서 인건비가 높은 코펜하겐으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남쪽에서 바라본 코펜하겐 시내 전경

ⓒ 안상욱


사람을 위한 도시 만들기

삶의 질은 저하되었지만, 덴마크 수도로서 코펜하겐은 끊임없이 성장해왔다. 이제 시 정부에게 남은 과제는 코펜하겐을 살만한 도시로 만드는 것이었다.

코펜하겐시는 전후 독일에서 유행한 보행자 전용 도로를 시내 번화가 일부에 시범 적용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1950년대부터 성탄절 등 특별한 날마다 차량 통행을 막았던 스트뢰에(Strøget)의 보행자 전용도로 지정이 있었다. 물론 반발은 거셌다. 주변 상인들은 차량 진입을 막으면 장사가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했고, 운전자들은 보행자 도로 준공식 당일에 경적을 울리고 야유를 퍼부으며 노골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현했다. 보행자 전용 도로의 아버지로 불리며 1962년부터 1978년까지 코펜하겐 도시 계획 부문 시장직을 역임한 건축가 알프레드 바사르(Alfred Wassard)는 대표적인 보행자 도로 사업인 스트뢰에 사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살해 협박까지 받았다.

그러나 반대 측 우려가 무색하게 스트뢰에 사업은 큰 성공을 거뒀다. 차량이 사라진 도로는 수많은 인파의 차지였고, 상점은 손님으로 붐볐다. 거리를 따라 카페가 들어섰고, 이는 스트뢰에와 맞닿은 거리가 보행자 전용 도로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다. 스트뢰에 중심부에서 주차장으로 활용되었던 아마게르토르브(Amagertorv) 공원은 덴마크 조각가 비요른 뇌르고르(Bjørn Nørgaard)가 제작한 화강암 패턴으로 새로이 포장되었다. 처음 1만 5800 제곱미터 규모로 시작했던 스트뢰에 사업은 확장에 확장을 거듭한 결과 이제는 10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면적을 포괄하게 됐다.


스트뢰에 보행자 전용 도로의 중심부 아마게르토르브 공원

ⓒ 안상욱


스트뢰에 사업이 성공을 거두자 코펜하겐시는 차량 통행량을 줄이고 보행자와 자전거에 친화적인 도시를 만드는데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덴마크 건축가 얀 겔(Jan Gehl)은 스트뢰에 사업 결과 발생한 변화 등을 연구하여 1971년에 <Life Between Buildings>라는 책을 펴냈다. 저서를 통해 얀 겔은 인간적 맥락은 무시하고 기능성만을 강조한 모더니즘 도시 계획을 비판하면서 인간을 중심에 둔 도시 계획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얀 겔의 선언은 오늘날 코펜하겐 도시 계획의 방향성을 정립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정책 당국과 도시 기획자 혹은 건축가가 일방적으로 도시 계획을 결정하는 하향식 의사 결정 구조에서 벗어나,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의 의견을 묻고 실질적으로 이들에게 필요한 요소를 반영하여 공간을 제대로 활용하고자 하는 노력이 시작된 것이다. 유구한 풀뿌리 민주주의 전통을 갖추고 있는 덴마크의 사회적인 풍토는 상향식 도시 계획을 실천해볼 수 있는 좋은 토양이었다. 결과적으로 코펜하겐 곳곳에는 시민에게 애용되는 개성 넘치는 공간이 다수 생겨났다.


자전거를 타는 코펜하겐 시민

ⓒ 안상욱


자전거를 통해 만들어가는 살기 좋은 도시 코펜하겐

살기 좋은 도시 코펜하겐을 완성한 또 다른 주인공은 자전거다. 도시 계획상 차량 중심의 도시에서는 사람보다 자동차에 많은 자원을 투자하게 된다. 차가 오가는 도로를 넓혀야 할 뿐만 아니라 주차 공간을 마련해야 하고, 이는 실질적으로 자동차가 주인공인 도시 공간을 낳는다. 코펜하겐시는 한정된 도시 공간을 시민을 위해서 활용하려면 도시에서 자가용을 몰아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무작정 차를 없앨 수는 없었는데, 도시 생활을 위해서는 이동성(mobility)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코펜하겐시는 시민을 대상으로 자동차 대신 자전거와 대중교통을 적극 활용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펼쳤다. 1992년 공사를 시작한 코펜하겐 지하철은 2002년 완공돼 운행을 시작했고, 같은 2002년부터는 시내 도로 중 양쪽 끝 2차선을 자전거 전용 도로로 활용하는 것 등을 골자로 삼는 코펜하겐 자전거 정책이 실행되었다. 교통 신호 체계도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 주행속도에 맞춰 개편되었고, 자전거 및 보행자 전용 교량을 비롯하여 정책 실현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이 확충됐다.

그 결과 1970년에 11만 명 정도였던 일일 자전거 통근∙통학 인구가 2015년에는 15만 명으로 늘었다. 코펜하겐 시는 2025년까지 60만 명에 달하는 코펜하겐 인구 절반 이상이 자전거로 통근∙통학하게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017년부터 2025년까지 최대 26억 크로네(4185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자할 계획이다.

자전거 진흥 정책은 덴마크의 청정 산업 육성 정책과 같은 맥락에서 실행되고 있다. 덴마크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 배출 중립 국가가 되겠다고 선언했는데, 코펜하겐시는 선도적으로 2025년까지 탄소 중립 도시가 되겠다는 야심을 밝혔다.

자전거와 대중교통을 앞세운 인간 중심의 도시 계획과 교통 정책 덕분에 코펜하겐은 반세기 만에 떠나야 할 곳에서 살고 싶은 도시로 탈바꿈했다. 지금은 유럽연합(EU)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유망한 젊은이들이 행복한 삶을 좇아 코펜하겐으로 모여들고 있으며, 그 수는 매달 1천 명 정도로 추산된다.


코펜하겐 대표 관광 명소 뉘하운

ⓒ 안상욱

다음 편부터는 코펜하겐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독특한 도시 재생 사례를 살펴볼 예정이다. 이민자 거주지가 형성된 동네에서 다양성이 지닌 아름다움을 일깨운 공원, 한정된 가용 토지로 인해 치솟는 임대료를 피하고자 물 위에 지은 학생 기숙사, 최첨단 기술과 오락시설을 겸비해 혐오 시설에서 관광 명소로 탈바꿈한 발전소 등이 그 주인공이다. 각각의 사례를 통해 독자는 거시적인 수요를 충족하면서도 지역만의 특수한 맥락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코펜하겐 도시 재생의 오늘을 심도 있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3편에서 계속


제작: 네이키드 덴마크

후원: 어반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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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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