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RBAN INSIGHT SERIES - 덴마크의 도시재생

3. [PLACE] 주택난 피해 바다로 나선 학생 기숙사, 어반 리거

NAKED DENMARK|

통유리창을 열면 시원한 바다 바람이 방 안으로 몰아친다. 창 밖에는 바다에 닿을 듯 물 위로 얕게 뜬 개인 발코니가 있다. 시선을 돌리면 북유럽 디자이너 가구와 원목으로 장식된 좁지만 정갈한 방이 한 눈에 들어온다. 원룸이지만 부엌과 욕실, 거실, 침실을 모두 갖췄다.

일광욕을 즐기고 싶을 때는 옥상으로 간다. 그곳에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쉼터와 옥상 정원이 마련돼 있다. 지하로 내려가면 헬스장과 공용 부엌과 거실, 세탁실이 있다. 방마다 할당된 개인 창고도 있으니 생활 공간이 잡동사니에 점령당할 걱정은 접어도 좋다. 입지도 훌륭하다. 수상버스를 이용하면 코펜하겐 시내에 한 정거장만에 닿는다. 그런데 월세는 오히려 저렴하다. 주변 시세의 절반가량이다.



어반 리거 원룸 실내

©Urban Rigger



어반 리거 원룸 실내

©안상욱


바다 위에 지은 기숙사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주거 조건이 좋은 이곳은 수상 기숙사인 어반 리거(Urban Rigger)다. 어반 리거는 합리적인 가격에 지속 가능한 건축물을 만들어 저렴한 학생 주거 시설을 제공하겠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콘크리트로 부유물(pontoon)을 만들어 물에 띄우고, 그 위에 제 역할을 다 한 화물 컨테이너 6개동을 별 모양으로 쌓아 거주 공간으로 활용한다.


어반 리거 외관

©안상욱


어반 리거 한 동에는 열두 명이 함께 사는데, 한 층에 세 동씩 2개 층으로 쌓은 컨테이너 여섯 동에 원룸 열두 개를 마련했다. 개인 공간은 24~27㎡(7~8평)에 불과하지만 옥상 정원과 1층 정원을 비롯한 공용 공간을 445㎡ 규모로 확보하여 좁게 느껴지지 않는다. 입주자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생활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공용 공간을 최대한 확보한 것이다. 무게가 550톤에 이르기 때문에 태풍이 와도 좌초되지 않고, 물 위에 떠 있어 예인선으로 끌면 통째로 이사할 수 있다.


어반 리거 옥상 전망대

©Urban Rigger


몰려드는 유학생, 심해지는 주택난

코펜하겐에 어반 리거와 같은 수상 기숙사가 탄생한 이유는 간단하다. 코펜하겐이 범 도시적으로 주거지를 확보하는 속도가 인구 증가폭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코펜하겐으로 유입되는 평균 인구는 매달 1천여 명에 달하는데, 특히 젊은 세대가 기회를 쫓아 모여들고 있다. 덴마크는 덴마크 국민에 그치지 않고 유럽연합(EU) 회원국 시민에게도 고등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한다. 게다가 코펜하겐에는 교육 기회뿐 아니라 글로벌 도시로서의 면면과 구직 기회도 갖춰져 있다. 이로 인해 코펜하겐에서 공부하는 유학생은 2만 2천 명에 이르지만, 이 중 코펜하겐에 거주하는 이는 1만 명뿐이다. 나머지는 수도권 혹은 스웨덴 말뫼에서 통학한다.

유입 인구의 증가세를 따라잡지 못하는 기반 시설 공급의 이면에는 역사가 깊은 여느 유럽 도시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는 걸림돌이 자리 잡고 있다. 코펜하겐에서는 일단 고층건물을 마음대로 짓지 못한다. 시내에는 6층이 넘는 건물이 거의 없다. 1905년 건설된 시청 종탑 높이를 기준으로 더 높은 건물을 짓지 못하게 하는 법을 1911년에 만들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일부 지역에서는 모더니즘 양식으로 고층 주거 단지를 지었으나, 개인 공간을 원하는 덴마크인에게 그런 주택 단지가 외면받았다. 결국 그곳에는 이민자와 저소득층이 모여들어 빈민가(ghetto)로 전락하였다. 이렇게 고층 주거 단지에 형성된 빈민가는 지금도 덴마크의 사회 문제로 남아 있다. 결과적으로 상황은 악화일로를 걸어 수요자가 기피하는 고층 주거 시설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건설사가 전무한 상황에 이르게 된다.

높은 용적률을 담보하는 고층 주거 시설의 공급이 늘지 않으니 결국 전반적인 주택 시세가 치솟기 시작했다. 코펜하겐에서 괜찮은 원룸(studio)을 빌리려면 한 달에 150~200만 원 가량이 든다. 평범한 유학생이 지불하기엔 턱 없이 비싼 가격이다. 저렴한 학교 기숙사가 있기는 하지만 유학생과 다른 지역에서 공부하러 온 학생이 나눠 써야 하기에 경쟁률이 높다. 기숙사 당첨에 실패하면 통학 가능한 지역에 셋방을 빌리는 선택지만이 남는다. 거실과 부엌, 욕실을 공유하고 침실만 따로 쓰는데도 한 달에 70만 원 안팎을 내야 한다. 이마저도 가격이 계속 오르는 추세다.


아버지 마음에서 발현한 기업가 정신

덴마크 기업가 킴 로우드루프(Kim Loudrup, 이하 킴)는 대학생이 된 아들이 코펜하겐에서 살만한 집을 찾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주택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심지어 유럽 전체로 눈을 돌리면 2025년에는 학생 주거지 400만 호가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었다. 이에 킴 로우드루프는 기업가의 시각에서 세계 각국 대도시가 저렴한 학생 주거공간을 마련하는데 골머리 썩고 있는 상황이 곧 기회임을 직감했다.

킴이 제안한 해결책은 폐컨테이너를 활용하여 집을 짓는 것이다. 이 방식은 저렴한 가격에 튼튼한 구조물을 만들 수 있으므로 건축 비용을 절약하여 임대료를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킴은 건물을 땅이 아닌 물 위에 짓는 방식을 제안했다. 코펜하겐에서 집을 구하기 어려운 이유는 근본적으로 대지가 협소하기 때문이므로, 실용적인 수상 주택의 건설은 곧 주택난을 새로운 차원에서 해소하는 길을 여는 셈이었다. 도심을 지나는 물길은 다른 교통수단이 발달한 뒤로는 더 이상 물류망으로 바쁘게 활용되지 않았고, 관광이나 여가 용도로 가끔 이용될 따름이었다. 대다수 주요 도시는 바다나 강을 끼고 있으니 지역을 아우르는 주거 상품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충분해 보였다.

그는 친구이자 유망한 건축가인 비야케 잉겔스(Bjarke Ingels)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들려주었다. 두 사람은 곧바로 의기투합하였으며 그 자리에서 스케치한 그림은 온전히 수상 기숙사의 초기 모델인 어반 리거 1.0에 반영되었다.

킴은 2013년 11월 덴마크개발주식회사(Udvikling Danmark A/S)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수상 기숙사 프로젝트 어반 리거를 사업화하기 시작했다. 비야케 잉겔스가 운영하는 회사인 비야케 잉겔스 그룹(BIG)은 어반 리거의 공간 디자인을 맡았다.


위에서 내려다 본 어반 리거

©Urban Rigger


첨단 기술과 업사이클의 만남

어반 리거는 사업 초기부터 지속가능성을 화두로 삼았다. 유학생에게 주거 공간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경제적 지속가능성은 물론이고, 주거공간 자체를 친환경적으로 만들려 노력했다.

당장 눈에 띄는 요소는 폐컨테이너다. 컨테이너는 규격화돼 있고, 세계 어느 곳에서나 구할 수 있다. 화물을 보호하지 못할 상태가 되면 폐기되는데 고철 시세가 높을 때는 재활용하지만, 시세가 낮은 시기에는 통째로 폐기 처분한다. 운반비가 재활용 수익에 비해 비싼 탓이다. 어반 리거의 구조물 활용 덕분에 8.5메가와트(MW)에 달하는 재활용 에너지 소비량이 450킬로와트(kW)로 줄었다. 새 컨테이너를 만들었다면 배출됐을 이산화탄소(CO2) 1100톤을 절감한 것은 덤이다.

폐컨테이너를 재활용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어반 리거는 난방에 쓸 에너지를 바다에서 얻는다. 깊은 바닷물은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에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온도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이다. 바다 깊은 곳까지 연결된 800미터 길이 난방 파이프를 통해 부동액을 섞은 물을 흘려 보내는데, 매우 적은 전력만을 소모하는 난방 펌프가 부동액을 순환시킨다. 바다 속을 돌아 펌프로 돌아오는 물은 지열에 비해 5~6도 가량 높은 온도를 갖는다.

어반 리거는 여름에 섭씨 18~21도 내외를 유지하는 주변 바닷물을 활용하여 40~55도 내외의 온수를 얻는다. 겨울에는 해수 온도가 2도 정도 차가워지지만, 에너지 솔루션 기업 단포스(Danfoss)가 개발하여 제공한 어반 리거 열교환 시스템을 활용하면 온수 온도를 70도까지 높일 수 있다. 지붕에 설치한 한화큐셀 태양광 발전기는 최대 7.5킬로와트시 전력을 만들어 외부 전력 없이도 난방 펌프를 거뜬히 돌릴 수 있게 하고, 남은 전력은 배터리에 저장한다. 이렇게 어반 리거는 난방과 온수 공급에 필요한 에너지 중 75%를 바다에서 얻는다.


어반 리거 해수 난방 시스템

©Urban Rigger


이 건물은 단열재에도 첨단 기술을 활용했다. 우주선에 쓰는 에어로겔(aerogel), 맥주나 음료수 캔을 재활용한 알루서모(Aluthermo) 반사 단열재로 주거공간을 감싼 덕분에 바닷바람을 맞으면서도 자체 생산하는 열에너지의 95%까지 보존할 수 있다. 글로벌 파트너사와 손잡고 최첨단 기술을 접목한 어반 리거는 기존 건축물 대비 난방 에너지 소모량을 81%까지 감축했다. 이미 컨테이너 주택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다.


어반 리거 여러 동을 연결해 수상 마을을 조성하는 계획 조감도

©Urban Rigger


버림 받은 공간에 그러모은 삶

어반 리거는 코펜하겐 내 유휴 공간에 사람을 불러 모아 지역을 재생한다는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덴마크개발주식회사는 프로토타입 동이 정박한 레프샬레외엔(Refshaleøen) 섬에 2019년 4월까지 5개 동을 더 짓고 서로 연결해 학생 72명이 모여 사는 작은 수상 마을을 조성할 계획이다.

레프샬레외엔은 코펜하겐 방위 목적으로 조성된 인공 섬이다. 근대에 들어 요새가 철거된 뒤로는 조선소 부지로 활용됐다. 조선업이 호황일 때는 덴마크의 공업을 상징하는 장소로 부각됐으나, 인건비 상승 등으로 조선업이 경쟁력을 잃은 뒤로는 거대한 조선소 시설이 드문드문 남은 채 버려졌다.

어반 리거는 2017년 여름 프로토타입 1개 동을 공개하고, 코펜하겐대학교 재학생 중 입주자를 모집했는데 대기자가 수 천 명에 이르렀다. 이윽고 2018년 5월 초에 첫 입주자가 어반 리거 프로토타입 동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이 시설은 버림받은 레프샬레외엔 섬에 생기를 불러왔다. 조선소 부지로 활용되었기 때문에 기반 시설이 없어 일반 주거 시설을 짓기 어렵지만, 뛰어난 자생력을 자랑하는 주거 시설 어반 리거는 불모지를 사람이 살 만한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어반 리거 최고운영책임자(COO) 비요른 뇌고르(Bjørn Nørgård)는 “오늘날 많은 구식 산업항이 문을 닫는 추세”라며 “어반 리거가 버림 받은 지역에 새 생명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어반 리거가 주춧돌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젊은이와 노인을 불러 모아 함께 살게 하는 거죠. 주위를 둘러보세요. 아무 것도 없잖아요. 이런 공간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죠.”


규제는 해결할 과제

물론 바다 위에 사람이 거주하는 건 단순하지 않은데, 특히 규제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항구 도시 코펜하겐이지만, 여전히 배를 거주지로 등록할 수 없다. 수상 가옥인 어반 리거 역시 아직은 거주지로 등록하지 못한다. 기존 주거지의 틀을 벗어난 어반 리거가 거주시설로 인정받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그러나 멀다고 가지 못할 길은 아니다. EU에서 도심 주거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는 덕분에 덴마크 당국도 어반 리거를 전향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코펜하겐 항구에 어반 리거 6개 동을 짓는 시범 사업 역시도 당당히 코펜하겐시의 승인을 얻어냈다. 비요른 뇌고르 COO는 다소 시간이 걸리지만, 당국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프로젝트이기에 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어반 리거 같은 수상 기숙사에 해당하는 가이드라인은 없습니다. 하지만 1~2년 정도 규제당국과 논의하면 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지금도 스웨덴에서 건축 허가를 기다리는 중인데요. 2년 정도 걸릴 거라고 봅니다.”



북유럽에서 세계로

이제 막 첫 발을 내디딘 어반 리거는 이미 전 세계에서 관심 어린 시선을 받고 있다. 스웨덴 건축 공모전에 당선돼 2년 안에 24개동을 수출할 예정이며, 한편으로는 독일 뒤셀도르프에서도 주문이 들어왔다. 한국에서도 사업차 방문객이 오고 있다고 한다.

어반 리거는 코펜하겐 항구에 6개 동을 지으며 얻은 노하우를 접목해 2020년까지 대량생산 시설을 갖출 계획이다. 지금은 덴마크와 북유럽 시장에 집중하지만, 대량생산 체계를 완비하면 세계 시장에 진출할 예정이다. 플라잉타이거 등 세계 시장에서 활약하는 덴마크 기업에서 일한 경험을 갖춘 라스무스 룀링(Rasmus Rømling)을 2017년 5월 최고경영자(CEO)로 발탁한 것도 글로벌 진출을 위한 포석이다. 비요른 뇌고르 COO는 끝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은 학생이 모여 사는 기숙사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노년층이 모여 사는 코리빙 하우스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미 그런 문의를 받기도 했지요. 또 수상 호텔로 만들 수도 있죠. 만약 한국에서 제작하게 된다면 멋진 부티크 호텔이 될 거 같은데요?”


※ 본 연재 콘텐츠는 URBAN RIGEER COO ‘Bjørn Nørgård’와의 인터뷰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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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네이키드 덴마크

후원: 어반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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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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