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RBAN INSIGHT SERIES - 영국의 도시재생

5. [GROUP] 도시를 재정의하다, 어셈블(ASSEMBLE)

이다인|

ASSEMBLE GROUP PHOTO

ⓒ ASSEMBLE / 출처: TATE 공식 웹사이트


THE MEANING OF SPACE IN A LIFE

인간은 ‘아무것도 없는 빈 곳,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범위, 특정 물질이나 물체가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자리’ 등으로 정의되는 공간(SPACE)에서 살아간다. 주체에 따라 공간은 서로 다른 크기, 색, 물건, 사람, 이야기, 의미, 가능성을 담아내기도 하고 혹은 과거의 흔적만을 품은 채 버려지기도 한다. 그렇게 공간은 거짓 없이 누군가의 삶을 온전히 담아낸다.

영국 스트랫퍼드(Stratford)에서 달콤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미지의 공간인 슈가하우스 스튜디오(Sugarhouse Studio)를 발견한 순간, 사람들은 그 안에서 삶을 읽어낸다. 이 공간의 주인은 영국 현대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활동을 보여준 예술가에게 수여하는 터너상(Turner Prize)의 2015년 수상자, ‘어셈블(Assemble)’이다.

WHO IS ASSEMBLE?

어셈블은 건축, 디자인, 예술 등 다양한 분야(건축, 철학, 역사, 언어 등)에서 활약 중인 20명 내외의 구성원이 비상시적으로 뜻을 모아 협업하는 프로젝트 집단(collective)이다. 아티스트, 건축가, 커뮤니티 활동가 등 각양각색 수식어로 묘사되는 이 그룹은 건축∙예술적인 차원을 넘어 도시재생의 방법론적인 측면에서도 선사례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어셈블의 프로젝트는 공통으로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 낸 물질 간의 단절(disconnection between the public and man-made materials)’을 탐구한다. 그리고 모든 구성원은 프로젝트에 참여하기에 앞서 ‘실행을 통해 배우는 태도(learn through doing by direct action and experimenting)’를 갖춘다. 모든 과정은 그룹 구성원의 직접 참여에 기반을 둔 협업(collaboration)을 통해 완성되고, 지역의 역사와 개성을 반영한 다양한 형태의 결과물이 만들어진다. 어셈블은 특유의 온화하면서도 섬세한 방식으로 결과물을 지역 커뮤니티와 공유한다.


上: THE CINEROLEUM

下: GRANBY PROJECTS

ⓒ ASSEMBLE / 출처: ASSEMBLE 공식 웹사이트


COLOUR THE CITY, COLOUR YOUR LIFE WITH ASSEMBLE

어셈블의 존재감을 널리 알리게 된 대표 프로젝트로는 2010년에 진행한 ‘The Cineroleum’ 프로젝트와 2015년에 터너상을 수상한 ‘Granby’ 프로젝트가 있다. 2010년에 진행한 첫 번째 프로젝트는 폐업한 주유소를 지역 영화관(Vintage Cinema Museum)으로 변모시키는 ‘The Cineroleum’ 프로젝트였다. 지원금을 포함해 총 4,000파운드가량의 저예산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어셈블의 구성원은 100여 명의 자원봉사자와 함께 제작 매뉴얼을 공유하고 건축자재를 기부받거나 재활용하여 영화관 커튼과 좌석을 직접 제작했다. 그리고 새롭게 꾸민 영화관을 손수 운영(영화 상영, 바 운영, 아이스크림 판매)하며 결과물을 지역 주민에게 공유했다. 상영이 종료된 직후 커튼이 올라가며 스크린 뒤로 차도가 모습을 드러낼 때, 관람객은 지역의 흉물로 남을 수 있었던 폐 주유소가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였음을 체감하며 특별한 감회에 젖는다. 나아가 이 프로젝트는 도시재생의 관점에서 영국 내 버려지는 4,000여 개의 주유소를 새로이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했다.

2013년이 되면서 이들의 활동 영역은 한층 확장되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어셈블의 ‘Granby’ 프로젝트가 진행된 리버풀(Liverpool) 남부 그랜비(Granby) 지역은 1970~80년대 이래로 쇠퇴일로를 걸어온 산업도시다. 그 과정에서 그랜비 지역은 대규모 실업, 비효율적인 지역 구획, 인종차별 시위 등의 문제를 겪었고, 리버풀의 역사이자 유산인 건물들은 거주자 없이 장기간 방치되어 쇠락해갔다. 더욱 큰 문제는 주민 커뮤니티 역시도 자생을 위협받는 상황에 놓였다는 점이었다. 일련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를 형성한 어셈블, 그랜비 커뮤니티 토지 신탁(The Granby Four Streets CLT), 지역 주민들은 그랜비 지역 재생 프로젝트에 각자가 지닌 자원을 투입하기 시작했고, 과거 번화가였던 사거리(four street)를 중심으로 길거리 조경 작업과 건물 재생 작업(예: 실내 정원 커뮤니티 공간 조성)에 매진했다. 그 결과 지역 커뮤니티의 지속적인 소통과 자생력을 강화를 위한 거점 공간이 마련되었다.

한국의 지역재생 사업 중 몇몇 벽화 마을의 사례를 살펴보면 관광 명소화에만 매진한 나머지 부가가치 창출을 통한 지역의 자생을 이뤄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그랜비 프로젝트는 지역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다채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남다르다. 예를 들어, 어셈블은 지역 주민들과 함께 문화적 창의성을 드러낼 수 있는 DIY 그랜비 워크숍을 운영함으로써 경제 활동을 통한 자생력 강화를 모색하였고, 재생된 지역 공간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네트워킹과 비즈니스를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WHAT MAKES ASSEMBLE DIFFERENT?

어셈블의 행보에 관심을 두는 이들은 완성도 높은 일련의 프로젝트를 보며 꾸준히 프로젝트의 성공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을 궁금해한다. 첫 번째 비결로는 유연(flexible)하고 평등(flat)한 조직체계 및 운영시스템을 들 수 있다. 어셈블 구성원은 매주 한 번 공식회의에 참석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본업에 충실하면서 프로젝트에 따라 유연하게 활동한다. 전담 업무가 있는 구성원은 제한된 자원과 여건 속에서도 거점 공간인 슈가하우스 스튜디오를 통해 각자가 지닌 자원을 공유하며 능률적으로 움직인다. 또한, 어셈블은 다양한 구성원을 배려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안정적인 협업을 이뤄낸다. 개별 프로젝트가 모두 학제 간 탐구의 결과물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이들은 구성원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건축에 한정되지 않은 다양한 관점을 반영한다. 토론회(Summit)를 통해 구성원 간 심도 있는 토론을 나눌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는 점 역시도 빼놓을 수 없다.


ASSEMBLE SUGARHOUSE STUDIO

ⓒ ASSEMBLE / 출처: ASSEMBLE 공식 웹사이트


ASSEMBLE OUR DREAMS, SHARE TOGETHER

슈가하우스 스튜디오는 어셈블을 닮은 공간이다. 스튜디오의 중앙부는 협업(Collaborative Working)이 가능한 오픈 스페이스로 설계되었고, 건물 외벽은 다양한 구성원이 손수 만든 형형색색 타일로 꾸며졌다. 그리고 어느덧 슈가하우스 스튜디오는 새로운 형태의 공공 공간이 되어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어셈블은 다양한 규모의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의 맥락을 담아내는 섬세한 접근법과 예술, 기술, 건축이 융합된 실행 방안을 통해 사회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리고 제한적인 조건 속에서 경제적이면서도 실용적인 대안을 내놓는다. 앞선 글을 통해 소개한 영국의 도시재생 사례가 대규모 자본 또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진행된 것과는 다르게 어셈블의 유연한 실행력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동종 업계 종사자들에게 현실적인 영감을 제공한다. 지역의 가치와 회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지금, 한국인의 일상과 공간은 어떤 맥락에서 해석되며 다듬어져야 할 것인가. ASSEMBLE OUR DREAMS, SHARE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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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AN INSIGHT SERIES - 영국의 도시재생' 연재글 리스트

1. [INTRO] KEEP CALM AND INNOVATE THE CITY
2. [PLACE] 재생과 개발 사이, 배터시 화력발전소
3. [PLACE] 미래도시를 설계하다, 킹스크로스
4. [PLACE] 지역 커뮤니티와 도시재생, 버로우마켓
5. [GROUP] 도시를 재정의하다, 어셈블(ASSEMBLE)  (현재글)
6. [OUTRO] 잘 생겼다 한국?! 도시재생 뉴딜 로드맵 


에디터

* 편집자: 강필호

이다인

도시가 살아가는 모습을 포착하는 기획자